“샤오하이.” 구양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후 지갑에서 천천히 명함을 꺼냈다. 벽에 기대 겨우 숨만 쉬는 구하이는 곧 다리가 꺾여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서있는 구하이를 보고 구양은 작게 웃었다. 명함이 구하이의 발 밑으로 떨어졌다.
“적당히 설쳐라. 귀여운 것도 그만하면 됐어.” 구양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서야 구하이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투성이의 손으로 명함을 집어 들었다. 바이루인. 의사의 명함이다.
8구역에는 와 본적이 없었다. 소문으로나 들어봤던 낙후된 지역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심하다고 구하이는 생각했다. 높고 좁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골목에 들어서면 낮에도 해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엘레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없어 보였다. 구하이는 계단을 올라가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배를 움켜지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막고 있던 천은 새빨갛게 물든지 오래였다. 겨우 문 앞에 서서 막 노크를 하려는데 문이 열렸다.
“올라오다 죽겠더군.” 구하이는 겨우 말을 내뱉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루인은 대꾸 없이 문을 열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구하이가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갔다. 좁고 지저분한 방이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침대에 구하이는 양해를 구하지 않고 주저앉았다. 루인은 기다렸단 듯이 은색의 트레이를 끌고 와 구하이의 옆에 앉아 가위로 구하이의 셔츠를 찢었다. 옆구리와 배에 자창이 여러 곳 있었다. 하나같이 급소를 피해 찌른 것으로 깊진 않았다. 보통 상대방을 고문할 때 나타나는 형태이다. 루인이 맑은 물로 피를 닦아내고 소독약을 바르기 시작하자 구하이가 고개를 젖히며 신음했다.
“구양의 밑에서 일하고 있나?” 구하이가 힘겹게 한쪽 눈을 뜨고 루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공간에 깨끗한 가운을 입고 있는 루인이 굉장히 이질적이라고 구하이는 생각했다.
“꾀멜겁니다. 마취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고문을 즐기지 않는 취향이라.” 마취약을 바르며 잠시 구하이를 올려다 본 루인의 눈과 구하이의 눈이 마주쳤다. 루인은 결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 의도한 것이 아니었으나 구하이의 정색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조금 당황스럽다고 느껴 얼른 상처로 눈을 돌렸다.
“구양의 밑에서 일하고 있나?” 구하이는 다시 한번 물었다.
“전 혼자 일해요. 누구 밑에서 일한 적 없습니다.” 루인이 막 바늘을 집어 들었다. “아프진 않을 겁니다.”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내가 오는지 어떻게 알았지?”
“구양씨가 부탁을 하더군요.”
“구양의 밑에서 일하고 있군.” 루인은 구하이를 올려다 봤다.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루인은 더 이상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구하이는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인 또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는 상대 같지도 않고. 루인은 상처를 붕대로 감아주며 생각했다. 구양이 부탁한 사람들을 많이 치료했지만 이 환자가 구양과 특별한 사이라는 것은 구양이 왔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구양이 보였던 이 사람에 대한 호의와 이 사람이 보이는 구양에 대한 적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치료비는 얼마를 줘야 하지?”
루인이 내어준 큰 사이즈의 니트를 입으며 구하이가 물었다.
“구양씨가 계산했어요. 그냥 가셔도 돼요.” 트레이를 정리하며 루인이 대답했다. 루인의 대답에 구하이는 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루인이 다시 말했지만 구하이는 제 지갑에서 현금을 모두 꺼내 제 명함과 함께 트레이에 내 던졌다. “부족하면 연락해.”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가는 구하이를 보면서 역시 말이 안 통하는 상대라고 루인은 생각했다.
“두 번이요.” 루인은 막 잠에서 깬 상태였다. 구양이 끈질기게 루인을 따라 침실로 들어왔다. “한 번은 총상이더군요.” “총상?” 구양이 되물었다. 루인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옷을 벗고 어제 벗어둔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구양은 벽에 삐딱하게 서서 루인을 바라봤다.
“또 뭐가 필요하죠?” 루인이 지겹다는 듯이 물었다. 구양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나가서 펴요.” 루인이 거칠게 막 구양의 입가로 향하는 담배개비를 낚아채서 휴지통으로 던졌다. 구양은 군말 없이 루인을 따라 진료실 겸 거실로 나갔다. 지저분하게 물건들이 정리되어있지 않았다.
“총상이라. 우리 애들은 아닌데.” 구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 또 오겠죠.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 같던데요. 그 사람.” 루인이 한 켠에 걸려있는 깨끗한 가운을 둘렀다.
“또 오면 전화해.” 구양이 지갑에서 수표를 몇 장 꺼내 건넸다. 루인은 짜증스럽게 수표를 낚아챘다.
“할말 있으면 직접 하시죠. 내가 무슨 사랑의 메신저 그런 것도 아니고, 귀찮게.” 구양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덕분에 두 배로 진료비 받는 사람이 누구더라?”
“그 사람 몸둥이가커서 두 배로 치료하기 힘들거든요. “ 구양이 이번엔 소리 내서 웃었다. 구하이에 대한 대화는 항상 이렇게 화기애애했다. 저 사악한 사람이 천진해 보일 정도라고 루인은 생각했다.
구양이 걸어가자 양쪽으로 서 있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집안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막 2층으로 향하려는 구양의 앞에 구웨이팅이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구양은 구웨이팅의 앞에 우뚝 섰다. “숙부. 나가계실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구양은 변명처럼 덧붙였다. “조심성이 없더구나.” 구양은 구웨이팅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타일러볼 생각이에요.” 구웨이팅의 손이 힘있게 구양의 어깨를 눌러 잡았다. “네가 잘 돌봐야지 않겠니?’ 대답은 필요 없단 듯이 제 할말만 하고 지나치는 구웨이팅의 뒤로 구양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럼요.”
구양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집안은 생기 없고 바스락거렸다.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집안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구웨이팅의 조직인 흑해는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작아졌다. 여기저기 조직을 넘보는 이는 많았고, 구웨이팅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기본적인 자금 조달도 힘들어 보였다. 죽어가고 있는 늙은이의 냄새가 난다. 구웨이팅도 답답할 터였다. 하지만 가장 집안을 위하는 이는 누구인가? 형제들과 가족들을 구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구양은 2층의 구하이의 방으로 향했다.
구하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흰 붕대 위에 피가 말라 비틀어 진 것이 보였다. 구양은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구하이가 탁자 위의 물병을 집어 들어 물병 채로 들이부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목이 자꾸 말라. 그러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고,” 구하이가 느릿하게 말했다.
“어떤 녀석들인지 알겠어?”
“글쎄.”
구양이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거짓말이다. 구하이가 모를 리가 없다. 그저 상관없는 거겠지. 구양이 담배를 꺼내 들자 구하이가 뺏어 들었다. “나가서 펴.” 구양이 피식 웃었다.
“숙부는 내가 더 이상 네 뒤를 봐주지 않을 까봐 두려운 모양이야. 어떻게 생각해 샤오하이.”
“이미 봐주지 않고 있잖아?” 구하이는 피가 뭍은 니트를 그대로 상체에 꾀어 입었다. 침대에 털썩 주저 않고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건 네 생각이지. 의사도 소개시켜 줬잖아.”
“거기, 엘리베이터도 없더군. 정말 죽을 뻔 했어.”
“그러니까. 말을 잘 들었어야지, 샤오하이. 안 그랬음 네가 8구역까지 갈 일도 없었겠지.”
구양은 주머니에서 장소와 시간이 적힌 메모를 꺼내 구하이에게 건넸다. 구하이는 눈길을 한번 주고는 받지 않았다. 구양이 메모를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이번에도 안 나오면 정말 죽일지도 몰라. 샤오하이.” 구양이 웃으며 구하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런 이유로.” 구하이는 멍하게 서있는 루인의 앞에서 상의를 벗었다. 온몸에 멍 투성이였다. 급한 건 얼굴이었는데 구하이는 습관처럼 옷부터 벗었다. 루인이 얼른 트레이를 끌고 왔다.
“형제싸움이 도가 지나치지 않나요?”
“이게 형제싸움처럼 보이나?” 루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구하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기도 했다. 루인의 손이 구하이의 얼굴로 다가갔을 때 구하이가 고개를 뒤로 뺐다.
“제대로 대요. 눈 근처가 찢어졌네요.”
“내 얼굴을 내어주는 건 네가 처음이야.” 구하이의 눈썹위로 루인이 물을 흘려 보냈다. 붉은 피가 묽게 턱밑으로 흘러 떨어졌다. 깊지 않은 상처가 드러났다. 루인은 조심스럽게 상처를 살펴보다가 말 많은 구하이가 조용해 졌다고 생각했다. 눈을 들어 구하이를 보자 구하이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죽이진 않았네요.” 루인이 무신경하게 내뱉었다.
“죽이진 않았지. 아직은. 근데 이제 곧 죽을 거야. 아버지한테.” 구하이가 루인을 끈질기게 바라보던 눈빛을 얼른 걷었다. 루인이 조심스레 바늘을 집어 들었다.
“예쁘게 꼬매줘야해.” 구하이가 말했다. 루인이 저도 모르게 웃었다. 구양이 왜 그렇게 어린애 대하듯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구양의 밑에서 일한다며 경계할 땐 언제고, 한두 번 보고나니 경계심 따윈 없는 것 같았다. 꼬박꼬박 계단을 불평하면서도 찾아왔다. 말잘 듣는 어린애 같다고 생각하면서 상처를 꿰맸다. 구하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보이는 데만 상처를 낸 건 구양스타일이 아니네요.” 상처를 다 꿰매고 트레이를 정리하며 루인이 얘기했다. 루인이 소량의 진정제를 놔 주었다. 구하이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급했나 보지.”
“그것도 구양답진 않네요.”
감겼던 구하이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구양을 좋아하나?” 막 기구를 정리하던 루인이 기막힌 다는 표정으로 구하이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이상하군. 구양과는 어째서 그렇게 각별하지?”
“각별하지 않은데요.” 루인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누가 누구보고 각별하대?
“구양의 밑에서 일하고 있고, 계속 나를 도와주는 이유도 구양때문이 아닌가?” 구하이가 이제는 상체를 일으켜 루인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루인이 구하이의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저는 진료비를 받고 일하고 있어요. 당신한테도 진료비를 받고 있잖아요.”
“구양때문이 아니면, 왜 굳이 8구역에서 이런 일을 하는 거야?” 구하이는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아귀가 맞아 떨어질수록 심장에 불이 붙은 듯이 뜨거웠다. 구하이의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구양을 돕기 위해 8구역에 숨어사는 건가?”
구하이의 확신에 찬 물음에 루인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누구더러 숨어산다는 건지,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하는 건 맞지만 나름 정당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루인은 ‘정당하게’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가슴이 따끔거렸다.
“여긴 우리 집이에요. 어릴 때부터 살았던. 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돈을 받죠. 그게 구양일수도, 당신 일수도, 또 다른 사람일수도 있어요.” 루인이 침착하게 덧붙였다. 말하면서도 왜 이런 것을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담. 어째서 병원에서 일하지 않고 혼자 일하지?” 구하이가 의심이 가시지 않는 눈빛으로 루인을 쏘아봤다.
“의사면허가 없으니까요.” 루인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이 사람에게 이런 말까지 하게될줄은 몰랐다. 싫으면 나가라고 하면 그만이다. 원치 않으면 다른 곳을 찾아보라고 하면 그만이다. 구양의 부탁 때문이 아니었다. 왜인지 몰라도 루인은 오기가 생겼고, 오기로 제 사정을 말하는 입이 자신을 상처 내는 것 같았다. 루인의 아슬아슬한 눈빛이 구하이를 피해 침대로 꽂혔다.
“면허가 없다니?”
“등록금을 충당할 수 없었어요.” 루인은 여전히 구하이를 보지 않고 말했다. 혼자 하는 말 같았다. 구하이는 그 자리에 굳었다. 루인의 눈빛이 어지럽게 일렁였다. 곧 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울지 않았다. 구하이는 부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쑤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 자켓에서 지갑을 꺼내 손에 잡히는 대로 지폐를 꺼내 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이었다. 구하이가 트레이에 지폐들을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치료비.” 구하이가 뒤 말을 흐렸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루인은 지폐를 곁눈질로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너스로 생각할게요. 나머지는.” 루인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써 웃었다. 돈을 지불하면 막 나가려고 했던 구하이는 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루인이 마침표를 찍듯이 딱딱하게 말했다. 구하이는 하는 수 없이 뒤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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